문화행사 - 또 다른 즐거움

영화

<루트 아이리쉬> (켄 로치, 2010)

21일(목) 오후 12 : 30 문과대학 202호

의심할 여지없이, 켄 로치는 여러 해 동안 영국에서 활동해 온 가장 중요한 현역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품활동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캐시 컴 홈>(1966), <케스>(1969), <희망의 나날들>(1975), <랜드 앤 프리덤>(1995), <네비게이터>(2001), <에릭을 찾아서>(2009)와 뛰어난 수작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등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이번 <루트 아이리쉬>의 대본은 폴 라버티가 썼다. 그는 켄 로치 감독의 가장 최근 작들의 대본을 써왔고 여러 차기작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 영화는 대단히 비극적이다. 영화는 망가져버린 전직SAS 병사, 퍼거스(마크 워맥)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이라크 사설 경비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다. 그러나 가장 친한 친구 프랭키(존 비숍)가 이라크에서 죽자, 그는 여러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프랭키의 죽음에 관해, 사설 경비 사업에 관해, 그리고 이라크 전쟁 자체에 관해. 영화의 제목은 그린존에서 바그다드 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명에서 따왔다. 이 도로에서 프랭키는 매복 공격으로 죽는다.

사설 경비 업체(가장 정확히 표현하자면 “용병”이라는 오래된 단어가 있다. 그 업계에서는 이 단어를 싫어하지만)는 지난 십년간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태 중 하나로 부각되어왔다. 군대를 보유한 민간 회사가 생겨났다는 사실은 시민의 자유와 해방을 무척 위협하는 크나큰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서방에 점령된 운 나쁜 나라들만이 아니라 서방세계 자체에서도 그렇다. 물론, 신노동당은 이런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켄 로치는 영화 내부자의 시선으로 이러한 사태 전개를 무척이나 비극적으로 조명한다. 퍼거스는 자신의 친구가 진정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자 조사에 착수하고 그 과정에서 이라크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게된다. 결과적으로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과 한 인간의 비극에 대한 탐구가 결합된 뛰어나 수작이 탄생했다. 개인적으론 <루트 아이리쉬>와 비견될 만한 영화가 올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 영국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1년 3월호 중에서

감독 소개: 켄 로치 (1936. 6.17~)

1936년 영국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1962년 BBC방송의 TV 시리즈로 연출 활동을 시작했다. 세 명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성, 낙태, 상업주의 등의 문제를 다룬 <업 더 정션, Up the Junction >(1965), 출산과 남편의 실직으로 집을 잃은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영국 복지제도의 허상을 다룬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1966) 등 60년대 영국 TV 영화의 걸작을 연출했다.

1967년 <불쌍한 암소, Poor Cow>(1967)로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켄 로치는 1970년대 말 레온 가필드 원작의 고전을 영화화한 <블랙 잭, Black Jack>(1979), 직장에서 해고된 한 철강 노동자가 사냥터지기로 전직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당시 영국 경제의 현실이 한 노동자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날카롭게 파고 든 <게임 키퍼, The Gamekeeper>(1980) 등을 내놓으며, TV 시리즈 성공에 이어 영국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한다.

1980년대에는 노동자 투쟁 현장을 돌아다니며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1990년대 이후 그의 영화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비밀 경찰에 의한 인권 운동가의 암살과 영국 정보기관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숨겨진 안건, Hidden agenda>(1990)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는 노동자가 가수를 꿈꾸는 여성과 동거하면서 겪는 일을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린 <하층민들, Riff-Raff>(1990)으로 91년 ‘올해의 유럽영화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레이닝 스톤>(1993), <랜드 앤 프리덤>(1995), <빵과 장미>(2000), <자유로운 세계>(2007), <에릭을 찾아서>(2009) 등 1~2년에 한 편씩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IRA(아 일랜드공화국군)와 해방 이후 아일랜드의 초상을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2006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섰다. 

켄 로치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겪는 소외와 비극, 그리고 이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담아낸다. 동시에 그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노동자들의  희망을 놓치지 않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하고 그 변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 시대 진정한 좌파 영화 감독이다.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 1925) 최신 복원판 

21일(목) 오후 12 : 30 문과대학 132호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의 러시아 혁명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1905년 혁명 2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 1905년 6월에 발생했던 포템킨호의 반란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몽타쥬 기법으로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오데샤의 계단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인용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의 1926년 첫 상영 후, 1930년 스탈린은 영화 서두 트로츠키의 오프닝 헌사를 빼버리고 대신 레닌의 포템킨 사건에 관한 언급을 첨가했고, 독일에서는 선동적인 장면이 삭제된 가운데 개봉되었다. 또한 선동적인 자막도 오역되었다. 2004년 러시아에서의 첫 상영판을 80년만에 그대로 복원하여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하였다.

이 복원판을 <맑시즘 2011>에서 만나보자.

감독 소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1898.1.23~1948.2.11)

에이젠슈테인은 러시아 혁명으로 차르가 타도된 후 1918년 적군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1920년에는 모스크바로 이주해서 모스크바 프롤레트쿨트(프롤레타리아 문화) 극장에서 무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다.

에이젠슈테인은 당시 프롤레트쿨트의 단장인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에게서 크나큰 영향을 받았다. 메이예르홀트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을 공개적으로 혹독히 비판하고 얼마 안돼 1940년에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총살당한 인물이었다. 그는 1930년대 초부터 시작된 스탈린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억압에 대단히 비판적인 인물이었다.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도 메이예르홀트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몽타주 이론은 필름의 편집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의 영화에서는 너무 흔하게 사용돼서 새삼스러울 것이 전혀 없게 됐다. 그러나 영화가 대체로 기술적인 매체로 취급 받던 당시에 몽타주 이론의 기여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몽타주 기법의 활용은 영화 시퀀스가 주는 총체적 감정 효과가 시퀀스를 이루는 부분들의 합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과도 유사한 방식의 편집을 이론화한 에이젠슈테인은 1905년 혁명을 기념하는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5가지의 몽타주 유형(운율, 리듬, 음조, 함축, 지적知的)을 이용해 하나의 전범을 만들었다. 영화의 완성된 예술적 형식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지지를 동시에 보여 주는 이 영화는 이념을 떠나 여전히 모두에게 지지를 받은 영화다.

에이젠슈테인은 이후 러시아에서 최고 감독의 영예를 누렸지만 소련 공산당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공산당은 그의 유작이 된 <폭군 이반> 3부작 중 2부를 극심하게 비판하다(공산당은 주로 형식주의적이라고 비판했지만 영화에는 개인숭배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상영 금지했고 3부를 편집한 필름마저 불살랐다. 러시아 혁명이 뿌려 놓은 자유로운 탐색과 추구가 완전히 몰살당하고 당 관료들의 비위에 맞는 사회주의리얼리즘이 득세했다.

에이젠슈테인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즉 계급적 억압에서 민중이 스스로 자유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영화를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혁명이 이 거장에게 불어넣은 활력과 창의력은 혁명이 타락하면서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는 영화의 형식에 지나치게 몰두하려 했지만 타락한 혁명은 이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레즈> (선호빈, 2011)

23일(토) 오후 12 : 00 문과대학 225호

△출교생 7명은 무려 7백 일 동안 초인적 투쟁을 벌였다.

2006년 4월 19일 고려대에서 학생 일곱 명(강영만, 김지윤, 서범진, 안형우, 오진호, 조정식, 주병준)이 쫓겨났다. 고려대 당국이 병설보건대를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보건대 학생들을 차별하는 데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본교’ 학생들이었다. 시위 도중 17시간 동안 보직 교수 아홉 명을 ‘감금’하는 ‘패륜’ 행위를 주도했다는 것이 출교의 이유였다. 출교 당한 학생 일곱 명은 본관 앞에 천막을 세우고 징계 철회 투쟁을 벌였다. 2008년 3월까지 무려 7백여 일 동안 계속된 이 투쟁은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과 학생운동 탄압에 맞선 대표적 투쟁이었다. 

<레즈>는 출교 사태를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의 과정 속에서 그린다.

고려대 당국이 말하는 “수요자(기업) 니즈(필요)에 맞는” 교육과 “글로벌 고대” 속에서 학생들의 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경쟁 강화로 학생들은 피가 마르는 고통을 느꼈고 학문은 기업의 필요에 종속돼 갔다.

출교된 일곱 명은 이런 변화에 반대하던 학생들이었다. 이 영화는 출교 조처가 이런 학생들에 대한 마녀사냥이고 무엇보다 2005년 고려대 당국이 삼성 이건희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에 반대해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데 대한 보복성 징계였다고 말한다.

출교생들은 한여름에는 찜통이 되고 한겨울에는 입김이 나는 곳에서 먹고 자며 여름과 겨울을 두 번씩 보냈다. 위염과 무릎 연골 파열, 허리디스크는 농성 중에 얻은 병이었다. 말하진 못했어도 불투명한 투쟁 전망에서 오는 초조함도 작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들은 이 투쟁이 자신들만의 투쟁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특유의 발랄함과 낙관, 의지력으로 자신을 다잡고 어려움을 극복해, 결국 재판에서 출교 무효 판결을 받아내며 승리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은 거인들’의 이야기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고 그래서 이 영화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카메라를 들고 출교생들과 동고동락하며 2년을 찍고, 그 후 3년을 편집해 77분짜리 영상으로 만든 감독의 정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평은 <레프트21>에 실린 글을 축약한 것입니다.

선호빈 감독

1981년 서울 출생 

대전외국어고 졸업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졸업

다큐멘터리 <용산>(2010) 촬영

다큐멘터리 <가면놀이>(2010) 촬영

2006년부터 고려대 출교사태 취재

사진전

세계를 뒤흔드는 아랍 혁명

21일(목) 12시~19시
22일(금), 23일(토) 10시~19시
24일(일) 10시~15시
민주광장 북카페 옆 천막전시장

2011년은 아랍 혁명과 함께 시작됐다.1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혁명의 물결은 이집트, 리비아, 예맨, 시리아 등 아랍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아랍 혁명은 21세기에도 혁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 눈앞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이 사진전에서 세계를 뒤흔드는 아랍 민중들의 생생한 모습을 소개한다.

1부 튀니지 “빵과 물이 필요하다. 벤 알리는 필요없다” 

2부 이집트 “우리는 가난만이 아니라 체제에 반대한다”

3부 리비아, 시리아, 예맨, 팔레스타인 “혁명의 불길이 아랍 전역을 휘감다”

4부 21세기 혁명의 희망이 확산되다.

음악

Get Up, Stand Up! ; 시대를 노래하다

23일 (토) 오후 9시 5분 대강당 102호

음악은 사람들의 삶과 시대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 예술 분야 중 하나다.

모순된 사회를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여 때로는 선동하고 때로는 위로해주던 음악가들과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그린 그들의 음악을 즐기는 시간.

그림으로 실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쓰바의 진행과, 전 ‘윈디시티’ 멤버 뮤지션 Quandol이 선곡한 음악과 이야기로, 우리 시대 저항 정신을 나눈다.

트위터로 퍼가요 미투데이로 퍼가요

참가 신청 맨 위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