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와의 대화》 전문(2003)

편집자주: 다음은 2003년 1월 중순 캘리니코스 방한 중 퍼슨웹이 그와 했던 인터뷰이다. 몇 군데 오역과 어색한 표현을 최일붕 동지가 바로잡고, 이해를 위한 주를 덧붙였다. 실제의 인터뷰는 더 길어, 캘리니코스가 비교적 자상하게 설명했으나, 그런 부분이 몇 군데 생략 번역됨으로써 그의 취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듯 느껴지는 곳이 더러 있다. 

로디지아에서의 정치적 각성

퍼슨웹(아래 ‘퍼’)> 우선 개인사에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은 선생님이 식민지의 중심과 주변에 동시에 발을 담가 왔다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경험,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캘리니코스> 저는 짐바브웨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지역은 아직 로디지아[(Rhodesia, 아프리카 남부의 중앙부 지역. 북로디지아의 잠비아 공화국 및 남로디지아의 짐바브웨로 나뉨)퍼슨웹의 주]의 식민지로 소수의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의 첫 열아홉 해 동안을 거기서 살았다는 것이 내게는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 아니었나 싶군요. 그 지역은 백인들의 특권이 체계적으로 보장된, 고도의 인종차별적 사회였습니다. 저는 바로 그러한 소수의 특권적 백인 그룹의 구성원이었던 거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20세기 말에 노예 사회와 유사한 곳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나의 정치 의식을 눈뜨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60년대 말 영국으로 건너가 거기서 대학을 다녔는데, 그 때는 마침 세계적 규모로 학생들이 급진화되고 있었습니다. 내가 맑시스트가 된 건 그러한 맥락에서였죠.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대항하는 것, 이것은 항상 내 정치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가 되어 왔습니다. 

퍼> 로디지아에서 부모님들을 어떤 일을 하셨나요?

캘리니코스> 아버지는 그리스인이고 어머니는 영국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식당을 경영하다가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여관업을 하셨습니다. 

퍼> 혹시 그것이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는 않았나요? 

캘리니코스> 글쎄요, 부모님은 단순히 직업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인생사 자체로 볼 때 매우 세계시민적(cosmopolitan) 경향을 띤 분들이었습니다. 내 부모님은 로디지아의 인종차별적 정권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그것이 나의 정치 의식을 일깨우는 데 한몫 했다고 확신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그리스 점령에 대항하는 그리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어요. 그 역시 나의 정치 의식 각성에 큰 도움을 주었죠.

퍼> 예전에 다른 인터뷰[정성진 교수와의 인터뷰, 1999]에서 로디지아의 ‘노예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그것에 깊은 관심을 지녔음에도 자신이 백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해방 운동에 직접 뛰어들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캘리니코스> 내가 로디지아에서 살 무렵에는 억압이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정권에 저항한다는 것은 그가 흑인이든 백인이든 ‘선택’일 수 없었습니다. 나의 정치적 행위가 ‘선택’이 된 것은 유럽으로 건너온 이후였습니다. 

* 1999년 정성진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다운로드
(☞다운로드 페이지 가기 - 해당 페이지에서 ‘알렉스’로 문자열 찾기 하세요)

퍼> 선생님이 중앙위원으로 있는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에 대해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캘리니코스> 우선 현재 제가 정치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은 트로츠키주의의 전통에서 나온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입니다. 1951년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로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것은 국제사회주의라 칭해진,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 여러 단체들의 국제적 연합의 한 부분입니다. 

내가 사회주의노동자당에 가입한 것은 1971년 옥스퍼드대 학생이었을 때죠. 그 때 이후 저는 쭉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활동해 왔고 현재는 중앙위원회의 위원으로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반(反)스탈린주의적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맑스가 원래 이해했던 바 그대로,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자기 해방, 즉 방법과 결과 모두에서의 민주적인 과정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옜 소련의 이념, 동유럽의 구정권들, 그리고 특히 북한과 같은 소위 “현존하는 사회주의 사회”들에 반대해 온 이유입니다. 

사실, 우리를 여타의 다른 트로츠키주의 운동,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 다른 좌파들과는 좀 다른 정치적 운동으로 정의해 주는 요소 중 하나는, 우리가 스탈린주의를 국가 자본주의, 즉 서구식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계급 사회로,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한 버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우리의 모든 실천을 형성·지도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돌아가 자신들을 스스로 해방시키기 위해 조직할 것을 부추기고 돕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자기 해방이란 결국 미국의 어느 맑시스트[핼 드레이퍼 ― 최]가 한 말, “우리는 사회주의를 아래로부터 나오는 무언가로 간주한다”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한국 내의 좌파

퍼> 한국은 언제 처음 방문했습니까?

캘리니코스> 1997년에 처음 한국에 왔었고 1999년에 다시 오게 됐어요.

퍼> 한국 방문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캘리니코스> 저의 한국 방문은 모두 한국 내의 좌파와 좀더 밀접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나의 노력과 관련됩니다. 하지만 한국을 처음 방문하기 전에 이미 저는 남한이 매우 중요한 사회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초대한 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웃음) 제가 남한 사회를 주시하게 된 이유는, 남한이라는 사회는 1960년대 초부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역동적인 자본주의적 발전을 겪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겪은 것과 같은 이러한 발전은 지극히 불균등하고 고도로 전제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저항 운동의 폭발적 전개, 특히 1987년에 있었던 노동자-학생들의 반란이 발생했던 겁니다. 이와 관련해 매우 활발하고 다양한, 지적으로 굶주린 좌파들, 그리고 매우 강력한 노동운동이 출현했어요. 사실, 소위 선진국의 경우에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좌파와 노동운동이 상당히 방어적으로 변하거나 실패를 경험한 데 반해, 세계의 다른 부분에서 새로운 좌파와 새로운 노동운동이 출현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은 정말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퍼> 이번 강연회를 주최한 <다함께>라는 단체와는 어떤 관계인지요?

캘리니코스> 이 단체는 우리와 같은 정치적 관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적 유대감 덕분에 이번 강연회에 초대를 받았고 이번 기회에 그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들은 한국 내 좌파들의 한 경향을 대변하고 있는데, 저와 많은 이념들을 공유한 듯 보이고 특히 영국에서 제가 대변하고 있는 정치적 경향과도 잘 맞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경로와 형태로 몇 년 간 계속 <다함께>와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퍼> 현금의 국제 환경 또는 국제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는 과연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캘리니코스> 글쎄요, 한두 가지 정도를 지적해 봅시다. 우선 한국은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습니다. 군사력을 이용한 매우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하면서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한반도의 상황을 매우 위험스럽게 동요시키고 있기 때문이겠죠. 둘째, 한국에는 매우 활력 있고 또 비교적 새로운 노동운동이 존재합니다. 좌파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경험들에 대해 숙고하면서 그러한 운동들이 어디까지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국제적 차원의 대화에 착수해야 합니다.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한국에서의 노동운동이, 아니 좀더 넓게 보아 한국의 진보 운동 전체가 국제적 차원의 투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관해 질문해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퍼> 이번 대선에서 보인 한국의 민주노동당의 약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리는 다음 총선에서도 민노당이 선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국제사회주의 운동이라는 좀더 넓은 맥락에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을까요?

캘리니코스> 민노당의 진전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말에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이제 더는 중간계급 정치인들의 선거 승리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그치지 않고 그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적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겠죠. 따라서 다른 모든 나라 노동계급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노동 계급 또한 자신들 고유의 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민노당이 거둔 성과는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노동자당을 결성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국에도 1900년 이래로 노동자당이 줄곧 존재해 왔습니다. 노동당의 집권은 특히 최근의 정세에 비추어 볼 때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노동당은 노동계급의 이해득실을 대변해야 하며 그들이 제시한 전망과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들과 다양한 실천 방안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경험 전체는, 당 지도부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모든 당원들이 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결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퍼> 대선에 덧붙여, 최근 우리는 촛불 시위 및 반미 집회라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연합이 형성됐고 새로운 이슈들도 많이 제기됐습니다. 좀 일반화시켜 말한다면, 다른 경우에는 기대하기 어려울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조화 같은 것이 이루어졌다고나 할까요? 선생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선생님은 민족적 의제와 사회주의의 의제 사이에서 일어날 잠재적 갈등뿐 아니라 그 둘의 겹침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들을 많이 겪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민족주의의 의제와 사회주의의 의제가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특히 촛불 시위와 같은 한국의 최근 정세에 비추어 볼 때 말입니다. 

캘리니코스> 한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촛불 시위에 참가할 기회는 없었습니다만, 촛불 시위 자체는 매우 중요한 상황 전개라고 생각합니다. 60년 가까이 분단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군대를 주둔시켜 온 미국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아래로부터 매우 강력한 민족주의의 주장이 생겨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주의에 커다란 한계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민족이라는 것은 모든 계급에 걸쳐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공동체죠. 여기서 생기는 위험이란, 노동자 및 다른 피착취·피억압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해 주지 못하는 세력을 지지하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죠.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보자면, 만일 우리가 민족주의적 개념 안에서만 사고한다면 우리가 세계의 다른 곳과 연대해 있다는 걸 충분히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모두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노동계급이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본가들은 세계화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세계 다른 지역의 노동자, 학생, 기타 여러 급진주의자들과 연대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퍼> 이번에 있었던 반미 집회는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대중 동원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시위 방식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 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소 비조직화된 대중 동원이 지닐 수 있을 의의와 한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캘리니코스> 글쎄요. 엄밀히 말해, 저는 인터넷이 자생적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훨씬 신속한 동원을 가능하게 해준 것만은 틀림없겠죠. 그렇지만 시애틀의 경우 그것은 운동가들의 매우 신중한 사전 준비와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인터넷은 매우 효과적인 연합의 도구이자 상당히 탈중심화된 기구여서 당국이 컨트롤하거나 예상하기 무척 곤란한 것이죠.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유럽에서 발생한 반세계화 운동의 경우처럼 인터넷 운동이 소위 전통적 형태의 대규모 저항운동과 상호 작용하는 것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1년 6월 제네바에서 있었던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시위에 30만 명이 모였고 작년 3월의 EU 정상회담 때는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죠. 역시 지난해 9월에는 런던에서 40만 명이 이라크전에 대한 반전시위를 벌였고 10월에는 피렌체에서 50만 명이 모인 반전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주요 운동들이 모두 다소 이완된 형태의 탈중심화된 인터넷 운동과 전통적 노동운동의 특징인 조직적 동원의 수렴에 의해 가능했던 겁니다. 매우 흥미로운, 옛것과 새것의 조화라고 생각됩니다.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미국과의 전쟁에 나서지 마라?

퍼> 선생님은 반세계화 운동 및 WTO, 세계은행, 다국적기업 등에 대한 저항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세계화 시위들이 종종 국가 정책에는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이에 따르는 각종 후속 조처들은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과대평가랄까,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캘리니코스> 자본주의 체제는 제도화된 강압적 권력이 엄청나게 집중된 체제입니다. 그것을 극적인 방식으로 실제로 변화시키는 데는 실로 엄청나게 많은 것이 수반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 “반세계화” 운동이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성취를 이루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유럽의 “반세계화” 운동은 9·11 테러 이후 반전 운동으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피렌체 시위의 초점도 바로 이라크전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이것이 부시 정부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토니 블레어는 미국의 일방주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지만 영국에서는 대대적인 반전 운동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이를 밀고 나가기에는 크나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영국의 반전 운동은 단순히 전쟁에 반대하는 전통적인 평화주의 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전의 이슈들을 세계화라는 이슈와 연결시키는 좀더 확장된 운동입니다. 

퍼> 영국민들이 그렇게도 반전의 목소리를 드높이는데도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캘리니코스> 토니 블레어는 다른 모든 전후 영국 총리들이 해 왔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1945년 이후 영국 정부가 세계 열강으로서의 영국의 역할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보존하고자 노력해 온 방법은 바로 미국과의 제휴, 특히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입지를 굳히는 것이었죠. 블레어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아주 명백히 추구해 왔습니다. 한편으로, 블레어는 부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시에게 착 달라붙는 것(stick very closely to Bush)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블레어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유럽에서 부시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어쨌든 블레어는 둘 중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해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정이야말로 1945년 이래로 영국이 자처해 온 전략적 입지를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블레어는 유럽에서 매우 고립돼 있고 영국대중과 노동자당의 이라크전 반대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블레어는 아주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고 볼 수 있겠죠. 1956년 영국의 총리였던 앤서니 이튼(Anthony Eaton)은 이집트를 공격해 수에즈 운하를 얻고자 하는 개인적 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이것이 바로 그를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일이 블레어에게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겠죠.

퍼> 최근의 북한 핵 사태는 어떻게 보십니까?

캘리니코스> 저는 북한 정권이 취하고 있는 행동들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북한 정권은 매우 시니컬하고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나 위기의 근본적 책임은 미국에 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협상에 의해 승인된 틀을 확립해 놓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거래를 실행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 틀은, 역시 협상의 한 부분이었던 ‘대체 핵발전소’(alternative nuclear power stations)를 성사시키지 못했던 거죠. 그러다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부시는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합의된 그 틀에 동의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혔고 결국 부시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도 않은 채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키는 발언을 한 겁니다. 그러자 북한 지도부는 미국이 이라크 문제에 전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그들[북한 지도부 ― 최] 스스로가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럼즈펠드가 뭐라고 얘기하든 간에 미국은 결코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할 입장에 있지 않고 북한은 북한 나름으로 이 같은 상황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끌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보여 주고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은, 비록 현재 미국의 전략이 “대량 살상 무기”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표방되고는 있으나, 진정한 규범은 결국 한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대량 살상 무기를 소유하는 것밖에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미국은 사담 후세인이 대랑 살상 무기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라크를 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누구나 알고 있듯 약간의 대랑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그를 공격하지 못하는 거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인도의 육군참모총장이 걸프 전쟁이 남긴 교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미국과 전쟁하지 말라”라고 대답했다죠? 현재 인도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은 결국 무기의 급증과 확산을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퍼> 페미니즘 운동, 동성애자 권리 운동, 그리고 환경 운동 등에 의해 제기되는 이슈들이 계급의 이슈 및 사회주의적 의제(agenda)와는 어떻게 조화를 이룬다고 보십니까?

캘리니코스> 계급을 초월하는 젠더, 인종, 생태 등과 같은 이슈들이 산재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같은 이슈들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를 문제삼을 때 그림은 좀 달라지게 됩니다. 왜냐면 우리가 현재 세계 권력의 구조를 살펴본다면 자본주의 착취, 환경 파괴, 여성 억압, 레즈비언과 게이 배척 등등의 모든 문제가 한데 결합돼 있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온갖 사회악들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주의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곧바로 대두되겠죠? 앞에서도 계속 주장했듯 오직 새로 출현한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발전의 현 단계에서 근본적 사회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집합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급투쟁과 그 밖의 다른 이슈들이 상호 연관될 수 있는 수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하나로 단결한 노동계급 운동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인종이나 여성 억압과 같은 이슈들을 함께 제기해야만 한다고 말입니다. 노동계급을 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주체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투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퍼>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지지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옮겨가고 있는데요.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캘리니코스> 우선, 그렇게 이동한 한국의 옛 좌파들은 유럽과 북미 쪽에서 시작된 경향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는 한국 민중들이 하는 일들이 모두 세계 다른 지역의 민중들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다만 여기에는 매우 유사한 공통의 패턴이 있음을 강조할 뿐입니다.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서유럽과 북미 지역의 좌파와 노동계급 운동이 겪었던 좌절의 결과로 출현했습니다. 환멸을 느낀 이들 지식인은, 우리는 파편화된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몇 년간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점차적으로 지적으로 주변화되는 현상을 보아왔는데, 그것은 1990년대 말 이후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이 전개되고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하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간주했던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현상을 보게 됐기 때문이죠. 자본주의에 대한 총체적 비판이라든가 해방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 말이죠.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나오미 클라인(Naomi Kline)이 최근 몇 년간 성취한 탁월한 성과들을 한 번 보세요. 이들은 좀더 확고하게 유물론적이며 총체적인 형태의 비판으로의 회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자기 해방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대중이 자신들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내는 그러한 과정이 존재하는 것, 그것을 진정한 사회 변화라 꿈꾸는 것입니다. 대규모의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은 모두 기존의 권력 구조에 맞서 그것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민주적인 형태의 권력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고도로 집중화되고 제도화된 권력의 거대한 집합체입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같은 뿌리의 더 큰 집합적 힘을 지닌 대안적 힘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조직화한 노동 계급입니다. 

퍼> 들뢰즈는 상당히 추상적이며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입니다. 들뢰즈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캘리니코스> 들뢰즈는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종종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 자신이 표현한 대로 들뢰즈가 말 그대로 매우 나이브(naive)한 사상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들뢰즈는 단지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묘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들뢰즈로부터 데리다와 같은 끊임없는 메타적 사고 과정을 볼 수 없다는 거죠. 들뢰즈는 데리다의 이 같은 메타적 성향을 크게 진척시켰어요. 세계의 본질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비록 혹자는 그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물질, 동물, 그리고 인간 사이에 놓인 전통적 경계를 터놓고자 하는 들뢰즈의 방법상의 특성으로 인해 그의 존재론은 매우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들뢰즈는 1960년대에 이미 세계에 대해 카오스모스(chaosmos)론을 펼쳤는데 이 역시도 제겐 매우 흥미롭게 여겨집니다. 말하자면, 이 세계를 규제하는 어떠한 조화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세계의 뚜렷한 특성은 바로 혼돈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가 사용하는 혼돈(chaos)라는 개념이 혼돈 이론에서 이해되는 바대로의 그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트와 네그리의 책 《제국》에 영향을 받은 “반세계화” 운동의 한 분파가 있는데 《제국》에서 사용된 매우 많은 이론적 용어들은 바로 들뢰즈적인 것들입니다. 따라서 들뢰즈의 저작은 매우 추상적인데도 정치적으로 사용될 수가 있는 듯 합니다. 

나는 들뢰즈와 관련해 크게 3가지 점에 대해서 유보적입니다. 우선, 들뢰즈는 고도로 세련된 형태의 생기론자(生氣論, material vitalism)입니다. 그의 초기 저작들 중의 하나가 바로 베르그송에 관한 것이었죠. 제 생각에 그가 생(生)을 이해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한 일종의 ‘비유기적 생’(non-organic life)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보면 그는 물질의 생기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극도의 형이상학이라 생각합니다. 생 관념은 진정한 유물론적 철학을 지탱할 만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 들뢰즈는 주체화의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다른 모든 포스트구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지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간의 행위주체 됨(agency)을 모두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에 대한 연구와 진화생물학과 같은 분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식이라는 이 두 가지가, 인류가 자율적 행동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을 ― 비록 그 행동이 어떤 조건이나 상황 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 명확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들뢰즈는 탈중심화, 산포(dispersal), 그리고 측면공격(outflanking)과 같은 수사(修辭)들을 발견해 냈고, 이는 “반세계화” 운동의 한 분파로부터 큰 관심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이것은 전략적으로 볼 때 전혀 희망이 없으며 부적합할 뿐입니다. 제가 수차례 지적했듯 자본주의의 권력은 고도로 중심화·집중화돼 있습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단순히 그것에 측면 공격을 가한다거나 그것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퍼> 안토니오 네그리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계신데요. 《제국》이라는 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캘리니코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국》은 대단한 책입니다. 왜냐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으며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산성과 창조성에 의존한다는 점을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강조하고 있거든요. 20여 년간 지속돼 온 좌파의 비관주의와 절망 이후에 말입니다. 이 같은 자신감은 분명 이 책의 한 매력입니다. 하지만 분석해 볼 때 저는 이 책이 이론적으로 허약하다고 보는데, 이 책은 “제국”을 일종의 탈중심화된 형태의 네트워크로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다중”(multitude)이라는 개념 또한 매우 모호하며 일관성 없는 개념이라 생각됩니다. 하트 자신도 그 단어를 하나의 시적 개념으로 묘사해 왔고, 《제국》에 쓰인 많은 용어들이 다소 시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점이 《제국》이라는 책을 좀더 매력적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현재의 세계 경제에서의 계급 현실과 맞서 싸우게 하고 있지는 않죠. 분석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제쳐 두고라도 저는 “다중”이라는 개념이 혁명의 새로운 주체로서의 다중과 “구식” 혁명을 일으키는 조직 노동계급 사이에 일종의 갈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조직화된 노동계급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맑시즘의 오늘,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퍼> 자본주의의 변화 및 발전과 더불어 노동계급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오늘날의 노동계급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캘리니코스> 자본주의가 그 역사를 통해 모든 종류의 변화를 경험한 매우 역동적 체제라는 말은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됐죠. 그 모든 변천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의존해 온 것은 다름 아닌 창의적 작업을 담당하는 노동계급입니다. 그러니 노동계급 역시 변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맑스 시절의 노동계급은 주로 영국과 북서 유럽에 집중돼 있었고 대다수가 미숙련 섬유 노동자들이었으며 여성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 여성 노동자들은 성적·인종적으로 억압을 받는 그룹이었죠. 소수의 남성 숙련 노동조합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20세기 중반의 노동계급과는 매우 다릅니다. 1940~5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AFL-CIO 등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들은 거대한 공장에서 일하는 중공업 관련 노동자들 ― 자동차 제조 노동자, 제철업 노동자, 고무 제조 노동자 ― 을 바탕으로 남성들 위주의 비교적 힘있는 조직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두번째 노동계급은 바로 대규모 중공업 공장에 속한 노동계급으로, 이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엄청난 좌절을 겪었습니다. 영국의 대처가 광부나 부두 노동자들과 같은 핵심 노동조합 조직을 굴복시켰던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자본주의가 재편되면서 화이트칼라, 여성, 서비스업 종사자 등과 같은 새로운 노동계급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좌파들은 이 같은 거대한 노동계급의 막대한 구조적 잠재력을 어떻게 자각적으로 조직화된 힘으로 번역해낼 것인가를 이슈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퍼> 연속혁명론과 트로츠키주의의 현재적 의의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오늘날의 정치 상황에서 연속혁명론은 어떠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십니까? 

캘리니코스> 연속혁명론은 1905년 러시아 혁명과 관련해 트로츠키에 의해 정식화된 이론입니다. 그 이론의 요점은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자본주의는 세계 체제이며, 그러나 동시에 매우 고도로 불균등한 발전을 이룬 체제라는 점에 있습니다. 서유럽 산업화 이후 발달한 러시아나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국가를 매우 깊숙이 연루시킨 자본가들은 영국의 초기 산업 혁명 단계에서와 같은 자본의 점진적 축적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빌릴 수 있는 한 최고 수준의 공장을 들여왔고 새로운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숙련 노동자들을 수입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러시아와 같은 소위 후진국에서 대규모 노동계급과 함께 매우 급속하게 강력한 산업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겁니다. 산업 자본주의의 급속한 출현과 노동계급의 공존 속에서 과거의 온갖 잔재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죠. 그래서 러시아에는 매우 현대적인 산업과 중세적 억압의 조건에 살고 있는 방대한 숫자의 영세농민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독재 정권의 틀 속에서 매우 신속하게 자본주의적 발전이 이루어졌죠.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것은 이 같은 상황이 특히 폭발적 조건을 형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과거로부터 내려온 불만이 러시아 영세농민들의 억압적 상황을 대변했고 차르의 독재 권력이 착취·사회불평등과 같은 근대 노동계급의 불만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죠. 이것은 노동계급이 더는 그들 자신의 경제적 요구를 위해서만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정초하는 운동이 출현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경우, 트로츠키는 비록 노동계급이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이야말로 차르 정권에 대항해 그리고 구래의 지주 계급에 대한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세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트로츠키의 예견은 실제로 1917년 10월의 러시아 혁명 당시 확증됐습니다. 우리는 지난 50여 년 동안 이와 유사한 과정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와 한국 모두 이러한 예가 될 수 있겠죠. 남아프리카에서는, 1980년대에 출현한 강력한 흑인 노동계급 운동이 인종분리정책에 치명타를 날렸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여러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발견되는, 민주적 권리의 부정과 관련된 인종 분리 정책을 전복시키는 데서 핵심적 구실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노동계급이었던 것입니다. 트로츠키는 그것이 바로 독재 정권에 대항한 민주주의 투쟁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이 나오게 되는 잠재력을 창출한다고 주장했죠. 그러나 그 과정에  필연성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성공적인 사회 변화는 올바른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조건에 전적으로 달려 있거든요. 오직 정치적으로 자각한 노동계급만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자각하지 못했다면 훨씬 제한적이고 왜소한 결과만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다시 남아프리카 이야기를 해 본다면, 인종 분리 정책의 전복은 인간 해방의 역사상 엄청난 진보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마침내 흑인들도 백인들과 똑같은 공민권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러나 정치적 인종차별정책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경제적 인종차별정책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게 현실입니다. 연속혁명론은 세계적 규모의 불균등 발전이, 어느 정도 산업화되거나 혹은 급속히 산업화한 제3세계에서 민주적 변혁과 사회주의적 변혁의 융합의 잠재력을 만들어 낸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경우,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언론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는 여전히 성취해야 할 민주적 과업이 상존하고 있다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퍼> 1998년 당시 선생님은 세계 공황 가능성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공황론에는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요? 자본주의는 불균등 발전으로 특징지어지며, 1998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는 위기를 극복할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일본·독일과 같은 소위 선진국들은 장기 불황을 경험할지 모르겠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 시장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는 듯한데요.

캘리니코스> 서방의 중앙 은행들, 특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 덕분에 동아시아의 위기, 아시아 금융위기는 전면적 세계 불황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한 흥미로운 예시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1998년에 나는 자본주의가 심연에 빠지기 직전이라고 썼습니다. 분명 그것은 심연에 빠졌으나 금방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위기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구체적인 예와 일반적인 예를 하나씩 들어 보죠. 

우선 구체적인 예로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금융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IMF가 개입한 사실을 들 수 있겠군요. 그 결과 수하르토 정권은 물러났고 아직까지도 인도네시아 사회를 관류하고 있는 불안정한 충격 기류가 형성됐던 겁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요성 때문에 이것은 하나의 특별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더 일반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아시아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와 국제 금융 제도의 정당성을 박탈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주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IMF가 아시아 금융 위기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 신자유주의 정책은 실패했다고 주장한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로부터 나온 비판의 목소리를 점점 더 크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매우 급속한 경제 성장의 과정을 겪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죠. 물론 저는 통계수치가 아주 정확하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중국 정부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분명 매우 역동적인 경제 성장 과정과 자본주의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이란 값싼 노동력을 구하는 과정에서 잘 사는 나라를 떠나 제3세계로 향한다는 말들을 종종 듣지만, 이는 일반적 명제로서는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여전히 OECD 가입국들에 집중돼 있거든요. 그런데 바로 중국은 여기서 예외라는 겁니다. 대단한 경우죠. [그러나] 엄청나게 역동적인 성장이 진행됨으로써 중국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을 곧 끓어넘칠 일종의 엄청난 압력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를 연상시킬 수도 있을 그런 모종의 인상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번에 중국에서 또 한번 폭발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훨씬 더 대규모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이 신자유주의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점은 모두 제쳐 두고라도 중국의 경제 성장은 국가에 의해 직접 지도되는 발전의 과정입니다. IMF가 심각히 경계하고 있는 것 또한 바로 이것이죠. 

퍼> 선생님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역시 타당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 말을 한 것은 제1차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만일 이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성을 지닌다면 과연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캘리니코스> 그 말의 현재적 타당성은 매우 명백합니다. 9·11테러 이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무력에 의존하고 있는 그러한 상황에 직면해 왔습니다. 세계는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핵무기도 점점 증가할 겁니다. 그 말은 다음 세기의 어느 시점에는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년에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는 거의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어요. 델리나 뭄바이 같은 아시아의 거대 도시들이 파괴되고 인류의 성과들이 모두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죠. 제가 보기에 야만주의는 바로 우리가 현재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며 이 같은 결과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데 대해선 더 말할 나위가 없겠죠. 제가 항상 강조해 왔듯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이러한 위험과 억압, 불안정의 원천은 모두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희망으로 남아 있는 겁니다. 

퍼> 하지만 사회주의라고 하는 말에서 시대착오적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캘리니코스> 저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렇게 옳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을 예로 들면서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씀드리죠. 우선 “반세계화” 운동이 지니는 중요성 중 하나는, 우리가 지난 20여 년 동안 영국의 대처 총리가 했던 말, 즉 ‘대안은 없다’라는 이념에 의해 압도된 세계에 살아 왔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것이 바로 승리했으며 역사는 끝났다고 말한 후쿠야마도 같은 생각을 표현했어요. “반세계화” 운동은 바로 이것이 틀렸음을 입증해 오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사실 굉장히 결함이 많은 체제라는 거죠. “반세계화” 운동의 슬로건에 나오듯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입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은 “그래, 좋다. 그럼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라고 묻겠죠? 우선, 우리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하고 대안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민주적으로 자치하는 계획 경제(democratically self-governing planned economy)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사회주의라는 겁니다. 요컨대 “반세계화” 운동은 사회주의의 문제를 다시금 하나의 의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퍼> 스탈린주의는 정말 죽었을까요? 트로츠키주의는 스탈린주의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겁니까? 

캘리니코스>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옛 소련의 스탈린주의적 변모에 반대하는 것을 기초로 출현한 것입니다. 트로츠키주의를 좀더 분명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를 자기 해방으로 본 맑스의 근본 사상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현재 스탈린주의는 세 가지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첫째, 잔존하고 있는 스탈린주의 정권입니다. 북한과 쿠바 정권을 보면 알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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